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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로그 방명록 S라인 포즈/Isabeli Fontana 자동차 묘기 2 여보, 자주 밀어 /'폭소 유머4집" 중에서



天然 記念物 향 나 무 관광[사적,유물]

 

天然 記念物 (2)

향 나 무

天然 記念物 88호 송광사의 곱향나무 쌍향수

송광사의 곱향나무 쌍향수는 나이가 약 8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2.0m, 가슴높이 둘레 4.10m, 3.30m이다.

두 그루가 쌍으로 나란히 서 있고

줄기가 몹시 꼬인 신기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시대에 보조국사(普照國師)와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무 지팡이를 이곳에 나란히 꽂은 것이

뿌리가 내리고 가지와 잎이 나서 자랐다고 한다

 

 

 

 

 

 

 

 

 

 

 

 

 

 

 

 

 

 

 

 

 

 

天然 記念物 198호 창덕궁의 향나무

창덕궁의 향나무는 나이가 약 7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2m, 뿌리부분 둘레 5.9m이다.

가지는 동서남북으로 1개씩 뻗어나갔는데 남쪽 가지는 잘라졌고,

북쪽 가지는 죽었으며, 동쪽 가지는 꼬불꼬불한 기형으로 자랐다.

나무의 모양은 마치 용(龍)이 하늘을 오르는 모습처럼 생겼다

 

 

 

 

 

 

 

 

 

 

 

 

 

 

 

 

天然 記念物 158호 울진 죽변리의 향나무

울진 죽변리의 향나무는 나이가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밑동에서부터 가지가 2개로 갈라져 있다.

한 가지는 높이가 11m, 둘레 1.25m이며,

다른 가지의 높이는 10m, 둘레가 0.94m이다.

 

 

 

天然 記念物 232호 양주 양지리의 향나무

양주 양지리의 향나무는 나이가 약 5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12.2m, 가슴높이 둘레 3.65m이다.

나무의 모습은 원줄기가 2m 정도 올라가서

7개로 갈라져 사방으로 퍼졌다.

이 향나무는 거창 신씨의 선조를 모신 묘소 옆에 심은 나무가

자란 것이라 하며 신씨의 내력에 관한 비석이 있다.

 

 

 

 

 

天然 記念物 240호 서울 용두동 선농단의 향나

서울 용두동 선농단의 향나무는 나이가 약 5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약 13.1m, 가슴높이의 둘레는 약 2.28m이다.

조선시대에는 선농단(宣農壇)을 만들어 중국의 예에 따라

농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신농씨(神農氏)와 후직씨(后稷氏)을 모시고

왕이 직접 나와 풍년을 기원하였다고 한다.

 

天然 記念物 313호 청송 안덕면의 향나무

영양 남씨의 무덤 옆에 위치한 청송 안덕면의 향나무는

나이가 4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7.5m, 둘레 4.9m이다.

줄기는 지면에서 30㎝ 정도 올라가서 네 개로 갈라졌으며,

나무의 키는 비록 작으나 밑둘레가 굵고,

가지가 넓게 뻗어 자라고 있다

 

天然 記念物 314호 안동 와룡면의 뚝향나

안동 와룡면의 뚝향나무는 나이가 65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3.3m, 둘레 2.3m의 크기이다.

가지가 아래로 쳐지는 것을 막기위해

16개의 받침대를 세워서 관리하고 있다.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선산부사를 지낸

이정(李楨)이 평안북도 정주판관으로서 약산성 공사를 마치고

귀향할 때 가지고 와서 심었던 세 그루 중

아직 남아 있는 한 그루라고 하며,『노송운첩』에

이에 대한 내력이 실려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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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난 어떡해? 오리 목아지도 뿌러졌다니 종합 만사

아! 난 어떡해? 오리 목아지도 뿌러졌다니??

어린 딸과 아빠 강쇠가 함께 목욕탕에 갔다.


사우나를 하고 나온 아빠가 잠깐 쉬려고

때밀이용 침대에 누웠는데,


혼자 놀던 어린 딸이 심심해지자

막 잠이 들려는 아빠를 찾았다.


하지만 잠들어 있는 아빠를 보고는

가지고 놀 장간감을 찾던중

아빠의 거시기를 본 딸이 신기해하며

아빠를 흔들어 깨우며 물었다.


"아빠, 이게모야?"

잠결에 귀찮은 아빠는

"으응~ 그건 오리야." 


라고 대답하자 마침 심심했던

차에 딸은 다시 아빠에게 물었다.


"아빠, 이 오리 갖고 놀아도 돼?"

아빠는 잠결에 그러라고 했다.


한참이 지났는데도 목용탕에 갔던

남편과 어린 딸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던 아내는마침 병원에서 온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 부리나케 병원으로 달려갔다.


응급실로 달려온 부인이 수술대에 누워 있는

남편을 보고 깜짝 놀라며 간호사에게 물었다.


"세상에, 제 남편이 왜 저렇게 되었죠?"

그러자 기가 막힌 표정으로 하는 말,

"저기 있는 딸아이에게 물어봐요."


부인은 의자에 앉아 훌쩍거리는 딸에게 그 이유를 묻자,

어린 딸이 엉엉 울면서 말했다.


"오리 갖고 놀고 있는데,

이게 갑자기 나한테 침을 찍 뱉잖아!


그래서 화가 나서 오리털이랑 다 뽑아버리고

오리알도 다깨고,

오리목까지 부러뜨렸지,

뭐..."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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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얼굴 자유로운글

 

笑容













































































































































































































































남을 위한 어떤 配慮 감동의 글

남을 위한 어떤 배려 (配慮)  


 


 

제법 오래된 이야기가 되겠는데...

가난한 학생이었던 마틴(Martin)

조그마한 도시에 있는 작은 대학에서

 입학 허가서를 받았습니다.

 

그는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일자리를 찾아 나섰고,

동네에 가까운 곳에 있는 온실  재배 농장의 현장 감독이

그 마틴의 사정을 듣고서 그곳에다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농장의 인부들은 점심 시간이 되면,

농장 한편에 있는 커다란 나무 밑에

 둘러 앉아서 점심을 먹었지만

 

형편이 어려워서 점심을 싸 오지 못한 마틴은

조금 떨어진 다른 나무 그늘 밑에서

그 시간을 보내야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현장 감독의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젠장,, 이놈의 마누라가 나를 코끼리로 아나,,,?

 

이렇게 많은 걸 어떻게 다 먹으라고 싸준 거야?

이봐~, 누구, 이 샌드위치와 케이크 좀 먹어 줄 사람 없어

 

그리하여...

마틴은 현장 감독이 내미는 샌드위치와

케이크로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현장 감독의 불평섞인 하소연은 매일 이어졌고...

그 덕분에 마틴은 점심때 마다  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봉급날,

마틴은 급료를 받기 위해 사무실로

 들어갔고, 급료를 받고 나오면서,

 

그곳의 경리 직원에게,

“현장 감독님께 감사의 말씀을 전해주십시오.

그리고 감독님 부인의 샌드위치도

 정말로 맛이 있었다고 전해 주십시오.

라고 말하자...

 

경리 직원은 놀란 눈으로  이렇게 되묻는 것이었다.

“부인 이라니요?

감독님의 부인은 5년전에 돌아 가셨는데요.

감독님은 혼자 살고 계시답니다,

 부인을 그리워 하시면서..

“... ???

 

진정한 배려(配慮),

그 것은 내가 하는 일을 자랑하거나 나타내지

않기에 상대방을 불쾌하거나부담스럽게 만들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감동(感動)은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는 것 입니.

 

 



복원전의 불국사와 경주 유적지의 옛 모습들 관광[사적,유물]

 


 

 
복원전의 불국사와 경주 유적지의 옛 모습들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 1910년대
복원하기 전 청운교 백운교의 돌계단이 어스러진 상태.
뒤로 다보탑, 석가탑이 보인다.



첨성대 - 1920년대
첨성대 뒷길을 오고가는 사람들...


포석정 - 1910년대
포석정과 바지, 저고리 입은 아이들...



성덕대왕신종(에밀레 종) 이전 - 1915년대
봉황대에 있던 종을 경주고적보존회 (현 경주문화원)로 옮기고 있다.


봉황대의 오솔길 - 1950년대
노동. 노서동 일대의 전경. 봉황대에는 오솔길이 나 있다.



태종 무열왕릉비
비석은 없고 귀부와 이수만 남아 있다.



삼존불 - 1930년대
남산 삼불사에 있는 불상으로 지금은 보호각을 설치했다.



석조약사여래좌상 - 연대미상
경주남산 용장계곡에 있던 불상 지금은 머리와
광배가 복원되어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다.


석조여래입상 - 1920년대
왕정곡 제2사지 석조여래입상으로 하반신이 땅에 묻혀 있다.
지금은 경주국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감은사 - 1950년대
북동쪽에서 바라본 모습.



안압지 - 1950년대
남쪽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뒷산은 소금강산.
일제때 세운 임해정은1977년에 황성공원으로 옮겼으며, 지금의 호림정이다.


황남동 고분 - 1920년대.
갓 쓰고 한복 입고 나귀 몰고 간다.



황남동 고분 - 1920년대.
죽은 아이를 넣은 옹기를 지게에 지고 묻으러 가는데 일본 순사가 검문한다.



삼 릉.
아이들이 지게 지고 나무하러 가다가 삼릉에서 놀고 있는 모습



경주 집경전 - 1922년대.
조선 태조의 영정을 모셨던 곳으로 1960년대 초까지 건물 일부가 남아 있었다.
사진은 집경전의 비각으로 추정되며 현재 경주여중 교정 동편에는
집경전 옛터라는 비석만 서 있다.



솥전 - 1910년대.
경주 읍성 밖에 장이 열리고 솥 가게에 손님이 많다.



경주 중심가 - 1930년대.
지금의 중앙로에서 대릉원 쪽으로 바라본 모습



경주 기생 - 1914년 4월
경주고적보존회(현 경주문화원)의 온고각 앞에서 기념촬영



스웨덴 쿠스타프 황태자 - 1926년대.
서봉총 발굴 현장을 찾은 스웨덴 황태자 쿠스타프(왼쪽에 안경 쓰고 무릎 꿇은
사람)와 일행. 스웨덴의 한문 표기인 서전(瑞典)과 출토된 금관에 새겨진 봉황
(鳳凰)에서 한 자 씩 따서 서봉총(瑞鳳塚)이란 이름이 명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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