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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절을 아십니까? 사적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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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삶의 울타리에서 벗어나기 좋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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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상 속에 있으면서도 그 일상 속에 빠져 휩쓸리기 보다는
매 순간 순간 그 일상의 틀에서 벗어나
삶의 길 위를 걷는 여행자가 될 수 있어야 한다.

길 위를 걷는 여행자는
될 수 있다면 같은 길을 반복해서 걷기 보다는
날마다 새로운 길을 걷게 마련이다.
물론 같은 길을 걸을 수도 있겠지만
같은 길을 걷더라도 그 길은 결코 같을 수 없다.
항상 새로운 길을 새로운 기쁨과 설레임으로 걷는다.

똑같은 길일 지라도
어제의 길과 오늘의 길은 다르고,
비오는 길과 눈오는 길이 다르며,
출근 길과 퇴근길이,
홀로 걷는 길과 함께 걷는 길이,
기쁜 마음으로 걷는 길과 슬프고 외로운 날 걷는 길이,
10년 전의 그 길과 오늘의 그 길은 다를 수 밖에 없는 것.

비록 우리 일상은 똑같이 반복될지라도
그 비슷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매 순간 순간 새로운 그 무엇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사실 우리의 삶이 겉으로 보기에는
매번 똑같은 반복처럼 보일지라도
사실은 매 순간 순간이 전혀 다른 새로운 순간이기 때문.

날마다 새로운 하늘, 새로운 바람, 새로운 구름
새로운 풀들 하며, 새로운 날씨로 우리의 삶은 항상 새롭다.
날마다 전혀 새로운 날씨를 혹시 보고 사는지.
일년 365일 날마다 새로운 날씨를 보고 있는가.
하늘도 바람도 구름도
또 날씨도 매일 매일 아니 매 순간 순간 새롭다.

화창하게 맑은 날도 똑같은 맑은 날이 아니고,
흐린 날도 같은 흐림이 아니며,
비오는 날도 똑같은 비 오는 날일 수는 없다.

초봄 4월의 빗줄기와 장마철 7월의 비
또 9월 10월의 비는 똑같은 비가 아니다.
TV나 기상청에서야 하루의 날씨를
비, 구름, 맑음, 흐림, 눈...
뭐 이렇게 몇 가지 경우로 딱 정해 놓았다지만
내가 살아온 삶의 날씨를 어떻게 그렇게 몇 가지로 딱 고정지을 수 있겠는가.

세상의 모습들
구름과 비 바람 하늘이며
이 모든 자연의 작지만 경이로운 변화를
사랑스럽고 영민한 눈으로 바라본 적이 있는가.
아마도 조금만 세상을 사랑하고 바라볼 줄 아는 이라면
그런 몇 가지 경우의 고정된 날씨의 수식에 호응할 수 없을 것이다.

몇 수 십년을 살았고,
수도 없이 많은 날을 살았지만
내 앞의 삶에 단 하루라도 똑같은 날씨는 없었음을...
비도 같은 비가 아니었고,
바람도 같은 바람이 아니었음을 말이다.

이 대자연 우주의 고고하고도 생기어린 변화를
어찌 몇몇 한정된 수식으로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똑같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내 나이 수 만큼이나 반복하며 흘러왔겠지만
한 번도 똑같은 봄 여름 가을 겨울 일 수는 없는 법.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
날마다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하고,
날마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 한다.
같은 가족을 만나더라도,
같은 직장 동료를 만나더라도
매 순간 새로운 가족으로, 직장 동료로써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그랬을 때
우리의 삶이 더욱 생기로울 수 있고,
흡사 어린 아이의 순수하고 맑은 눈빛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나는 때때로 소망한다.
나에게 매우 익숙한 어떤 것,
항상 옳다고 생각했던 어떤 것,
이것이 내 모습이라고 생각되는 것,
내가 걷고 있는 삶의 길이며
심지어 한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던 진리까지도
완전히 텅 비워 버린 채
전혀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자 소망한다.

매일 매일 보아 오던 관점에서가 아닌
그 모든 편견이며 선입견, 고정 관념의 틀을 놓아 버리고
그저 텅 빈 시선으로 그것들을 바라보려고
내면의 뜰에 비질을 할 때가 있다.

그렇게 익숙하던 것들,
항상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
이것은 당연한 진리라고 한번도 의심하지 않았던 것들,
내 삶에 주어진 길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될 수 있다면 단순하게 또 한 발 물러서서 객관으로 바라보면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실상을 보게 될 때가 있다.

익숙하다고 생각되던 것들이
전혀 새롭게 다가와 좀 더 조심스러워 지기도 하고,
이전에는 생각해 보지 못했던 창의적인 영감이 떠오른다거나,
보이지 않았던 부분들이 보여지기도 한다.

때로는 절대적으로 옳다고 믿었던 것이
옳지 않을 수도 있음이 보이게도 되고,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 조차
진리라는 울타리 속의 비좁은 관념이었음을 보기도 하는 것이다.

그랬을 때
때로는 목사님의 진지한 새벽기도 안에서,
신부님, 수녀님의 미사 기도 속에서,
저 대 자연의 숨결 속에서,
바람과 구름, 하늘과 별, 숲과 호수, 흙과 야생의 풀들 속에서도,

저 인디언이나 아프리카 호주의 원주민의 삶 속에서,
저 산골 마을 지게짐을 지고 땀을 훔치시는 황혼의 노인에게서,
저 어린 아이의 맑은 웃음 속에서,
혹은 시골 아낙의 수줍은 미소 속에서도
부처님의 숨결, 법신의 온화한 미소를 보고 진리를 볼 수 있게 마련이다.

때때로
자신이 짊어지고 온 삶의 그림자를
내가 아닌 다른 존재로써 바라보시길...

항상 옳았던 것,
진리라고 생각했던 것,
내겐 너무나 익숙한 것,
나의 모습이라고 고정 지었던 것,
내 사람이라고 고집했던 대상...

이 모든
내 삶의 그림자며,
나를 규정지어온 모든 울타리로부터
한번쯤 자유로와 지시길...


-목탁소리  법상 스님 글

 
 

성불 하십시요

 




'볼륨감 넘치는 비키니' 선한 女

 


 

 

 휴가지에서 비키니 자태 뽐낸 정순주 아나운서 

 

 

 

 

 

정순주 아나, 볼륨감 넘치는 비키니 인증샷 공개




 정순주 아나, 깜짝 치어리더 변신 ‘완벽 칼 군무’


 

정순주 아나운서 근황 ‘베트남에서..’



파리 개선문을 통과한 두 개의 관 [아빠와 함께 쓰는 파리여행기] 샹젤리제 거리와 개선문 종합 만사

파리 개선문을 통과한 두 개의 관
[아빠와 함께 쓰는 파리여행기 ] 샹젤리제 거리와 개선문

[나의 이야기] 원하는 모든 것이 다 있는 샹젤리제 거리

콩코르드광장에서 개선문(Arc de Triomphe)까지 일직선으로 나있는 1.91㎞의 길 이름이 바로 샹젤리제대로(Avenue des Champs-Élysées)다. 왕복 10차선의 차도 양쪽으로 널찍이 배치된 인도에는 느릅나무와 린덴나무 등 울창한 이중 가로수 사이로 사람들이 걷기 마련이지만, 마침 우리가 갔을 때는 매달 차 없는 거리가 실현되는 첫 번째 일요일이었다.

거리는 사람들로 붐볐다. 샹송 '오 샹젤리제(Aux Champs-Élysées)'로 우리에게 친숙한 이 길은 대통령 관저로 사용되는 엘리제궁을 비롯해 파리식의 호텔·레스토랑·카페·극장·영화관과 에르메스·루이뷔통·샤넬 등 명품점이 즐비한 거리였다.
 
 차 없는 거리가 실현되는 첫 번째 일요일의 샹젤리제 거리
▲  차 없는 거리가 실현되는 첫 번째 일요일의 샹젤리제 거리
ⓒ 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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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나는 중간쯤의 한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매년 강림절부터 크리스마스와 주현절(主顯節)이 있는 11월 말에서 다음해 1월초까지는 축제시즌 조명이 실시되고, 매년 7월 14일 프랑스대혁명 기념일엔 대통령이 참관하는 대규모 군사 퍼레이드가 벌어지는 샹젤리제.

"샹젤리제엔 당신이 원하는 모든 게 다 있죠(Il y a tout ce que vous voulez aux Champs-Elysées)"라는 샹송 가사처럼 이 거리엔 모든 게 다 있었지만, 부족한 게 하나 있었다. 그건 뉴욕 5번가에서 느끼는 활력이다. 생각해보니 파리에도 라데팡스의 금융가가 존재하지만 세계금융의 40%를 좌우하는 뉴욕의 월스트리트에 비할 바는 아니다. 결국 활력은 경제라는 얘기다. 이 말을 들으신 아빠가 한마디 하셨다.

"파리는 늙은 거다. 노쇠는 자연의 자아비판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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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나도 웃으며 한마디 했다.

"노쇠했어도 아름답긴 해요."
 

그리곤 다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행인들의 흐름을 따라 걷다보니 어느새 개선문 앞이었다. 인근 메트로 역은 조르주 생크(George V) 역이다. 이곳에 오니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의 정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미국인 말소리가 들리고, 휴대폰 카메라를 든 독일인 말소리도 들리며, 주변을 아랑곳하지 않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의 큰 목소리도 들린다.

개선문 밑까지 가보고 싶었으나 차만 보일 뿐 사람이 지나갈 건널목이 보이지 않는다. 자세히 보니 개선문으로 통하는 지하도가 있었다. 그곳을 지나 지상으로 올라가자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와 있었다. 멀리서 볼 땐 잘 몰랐는데 막상 개선문 밑에 와서 보니 규모가 상당한 건축물이었다.
  
 1982년 평양의 개선문이 세워지기 전까지 세계 최대였던 파리의 개선문
▲  1982년 평양의 개선문이 세워지기 전까지 세계 최대였던 파리의 개선문
ⓒ 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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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가 50m다. 멀리서 볼 때 개선문 맨 꼭대기에 참새처럼 보이는 형상물들은 모두 그곳에 올라간 관광객들의 모습이었다. 나폴레옹이 만든 것이라 역시 규모가 크다. 개선문 가운데 제일 큰가 싶었으나 인터넷을 찾아보니 1982년 평양에 세워진 개선문이 파리의 개선문보다 10m가 더 높다는 것이어서 놀랐다.

"그래? 하긴 문명이란 서로 모방하고 그러는 거지 뭐. 루브르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튈르리 정원 쪽으로 보이던 개선문이 하나 있었지?"
"카루셀 개선문(Arc de Triomphe du Carrousel)요?"
"그래. 그게 바로 이태리 로마에 있는 콘스탄티누스 개선문(Arco di Constantino)을 본뜬 거라더라."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모방한 파리의 카루셀 개선문
▲  로마의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을 모방한 파리의 카루셀 개선문
ⓒ 강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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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루셀 개선문의 높이는 19m였다. 그러니 아우스터리츠 전투에서 오스트리아·러시아 연합군을 격파한 뒤 의기양양해진 나폴레옹의 성에 차지 않았다. 태양왕 루이 14세를 능가하고 싶었던 그가 아닌가? 그래서 샹젤리제 끝에 이 승전기념물을 다시 세우도록 명령한 거였다. 이번엔 로마제국 최초의 개선문인 티토 개선문(Arco di Tito)을 모방해서. 시작은 1806년이고 완공은 루이필리프 왕 때인 1836년이었다.

"1840년 운구차에 실려 이 개선문을 통과한 최초의 인물이 나폴레옹이다. 재미있는 건 그로부터 45년 뒤 개선문을 통과한 운구차가 하나 더 있었다는 점이야."
"누구였어요?"
"빅토르 위고."

  
 개선문을 통과하는 빅토르 위고 운구차와 시민들의 장례 행렬
▲  개선문을 통과하는 빅토르 위고 운구차와 시민들의 장례 행렬
ⓒ wiki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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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에서 왕이나 대통령이 아닌 인물이 국장으로 거행된 건 위고가 유일했다고 한다. 당시 기록에 보면 개선문 밑에 가설된 시신 안치소에 2백만 파리 시민들이 주변 길과 광장을 가득 메웠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신이 영구 안장되는 팡테옹까지 시민들의 장례행렬이 뒤따랐고.

"참 대단해요. 일개 작가를 그처럼 대우해준 나라가 있었다는 게?"
"일개 작가가 아니야. 당시 프랑스인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긴 인물이 나폴레옹과 위고였다고 하니까."
"그럼 문무의 두 영웅이 개선문을 통과한 거네요. 하긴 위고의 대표작 <레미제라블>은 감동적이죠. 전 그 뮤지컬을 보고 울었거든요."


개선문 밑에 벤치가 없어 아빠와 나는 지하통로를 통해 다시 개선문 길 건너에 있는 벤치로 걸어갔다.

[아빠의 이야기] 세계의 수도로 부상하기 시작한 파리

딸과의 대화는 개선문에서 빅토르 위고 그리고 그의 작품인 <레미제라블>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지고 있었다. 2012년 개봉된 영화 <레미제라블>의 바탕이 된 뮤지컬은 원래 프랑스 것이었다. 1980년 파리 첫 공연 때 여주인공 노래를 부른 것은 프랑스 가수 로즈 로랑이었는데, 이것이 대성공을 거두자 1985년 런던 공연, 1987년 뉴욕 공연, 같은 해 도쿄 공연으로 이어졌다.

"제가 본 건 영화였어요."
"나도 봤는데 같이 보던 엄마가 울더라. 여주인공 노래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러자 벤치에 앉은 딸이 핸드폰을 꺼냈는데, 유튜브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 목소리는 우리가 본 뮤지컬 영화의 앤 헤서웨이가 아니라 프랑스 가수 로즈 로랑의 것이었다.
 
나는 다른 삶을 꿈꿨지만 J'avais rêvé d'une autre vie
삶이 내 꿈을 죽여버렸죠 Mais la vie a tué mes rêves
도살하는 동물의 마지막 Comme on étouffe les derniers cris
비명소릴 억누르듯... D'un animal que l'on achève...
 
"꿈을 이루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느냐? 인생에 크고 작은 좌절과 회한은 있기 마련인데."
"그러니까 기도하는 거겠죠?"
"그래. 하지만 기도가 무엇이냐? 신학자 폴 틸리히는 '크고 깊은 한숨(The great deep sigh)이라고 했다. 지나고 보면 기쁨과 영광의 순간은 너무 짧았고 좌절과 회한의 시간은 너무 길었다는 생각이 든다."
"영광이란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게 있어요. 2차대전 직후 보무도 당당하게 파리로 입성하던 드골 장군의 사진 말이에요. 바로 이 광장을 지나갔죠?"

  
 2차대전 직후 파리로 입성하는 드골 장군과 그 일행.
▲  2차대전 직후 파리로 입성하는 드골 장군과 그 일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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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갔지. 하지만 그 전엔 독일군 행진이 있었다. 미국 공문서기록보관소(NARA)에 소장되어 있던 사진인데 한번 볼 테냐?"

핸드폰 갤러리를 클릭해서 딸에게 보여준 사진은 1940년 6월 14일 파리를 점령한 독일군 행진을 보고 연도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파리 시민의 모습이었다.
 
 파리를 점령한 독일군 행진을 보고 연도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파리 시민의 모습
▲  파리를 점령한 독일군 행진을 보고 연도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파리 시민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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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과 슬픔, 영광과 좌절의 순간이 엇갈린 이 광장은 1970년부터 샤를드골광장(Place Charles-de-Gaulle)이란 이름으로 불리지만 그 전에는 에투알광장(Place de l'Étoile)으로 불렸다. 개선문에서 시작되는 12갈래의 길이 마치 별빛처럼 사면팔방으로 뻗어나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데, 내가 딸과 함께 걸은 샹젤리제는 바로 그 12길 중의 하나였다.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갈래의 길이 별빛처럼 사면팔방으로 뻗은 에투알광장
▲  개선문을 중심으로 12갈래의 길이 별빛처럼 사면팔방으로 뻗은 에투알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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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관광객들이 웅성거리는 샹젤리제대로를 건너다보며 딸에게 물었다.

"샹젤리제(Champs-Élysées)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니?"
"엘리제 밭?"


아주 틀린 답은 아니다. 영어로 일리지언 필드(Elysian Fields)라고 하는 샹젤리제는 선량하고 덕 있는 사람들이 사후에 간다는 그리스신화 속의 극락세계, 곧 엘리시움(Elysium)에서 온 말이다. 그러나 당초 샹젤리제는 사람이 살지 않는 늪지대였다. 이 늪지대를 메꿔 느릅나무와 린덴나무가 심어진 차도로 만들도록 지시한 것은 앙리4세의 왕비였던 마리 드 메디시스였다. 피렌체 출신이었던 그녀는 자신의 고향인 피렌체의 카시네 산책길에서 영감을 얻어 이 길을 만들게 했다고 한다.

"예술은 진공 속에서 태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샹젤리제도 진공 속에서 태어난 게 아니었던 거야. 길 이름도 처음엔 샹젤리제가 아니었다."
 

초기엔 그랑쿠르(Grand-Cours), 그리유 루아얄거리(Avenue de la Grille Royale), 튈르리궁거리(Avenue of the Palais des Tuileries) 등으로 불리다가 1694년부터 그리스신화에 나오는 샹젤리제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 이유는 본래 늪지대였던 이곳에 매춘하는 여자들이 꼬인다는 보고가 잇달자 이 지역의 불건전한 이미지를 상쇄시키기 위해 붙인 이름이었다고 한다. 그 뒤 샹젤리제 이름이 확고히 정착된 것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다.

대혁명 이후 프랑스 근대사는 혁명과 반동의 되풀이다. 개선문을 착공한 것은 나폴레옹이었고, 이를 완성한 것은 7월혁명으로 왕위에 오른 루이필리프였다. 그러나 그는 2월혁명에 의해 쫓겨난다. 이렇게 해서 들어선 제2공화정의 대통령에 당선된 자가 누구였느냐 하면 나폴레옹의 조카인 나폴레옹 3세였는데, 그는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다음 해 쿠데타를 일으켜 4년 단임제인 공화정을 무너뜨리고 황제 자리에 오른다.

황제가 된 그는 오스만 남작을 파리 시장에 발탁한 뒤 파리를 재정비해 경쟁국인 영국의 런던보다 더 멋진 수도를 만들라는 명을 내린다. 전권을 위임받은 오스만 시장은 복잡하고 비위생적인 파리 도심을 전면 재정비하기 시작했고, 그 결과 생겨난 것이 우리가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답사했던 몽마르트르의 예술촌인데, 이 개선문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샹젤리제대로에 이어 개선문 광장에서 시작되는 방사선 모양의 길들이 생겨나는 건 나폴레옹 3세 때의 일이다. 재미있는 건 12개의 길 중의 하나인 델로대로(avenue d'Eylau)는 나중에 <레미제라블>의 작가 이름이 들어간 빅토르위고대로(avenue Victor-Hugo)로 바뀐다는 점이다. 프랑스인들이 빅토르 위고를 얼마만큼 높이 평가하느냐는 반증이기도 하다.

"방사선 도로만 보아도 책상 위에서 자대고 그은 설계도를 불도저식으로 밀어붙인 것 같아요. 개발연대의 서울처럼."

그랬다. 그 때문에 오스만 남작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존재한다. 하지만 그 같은 과감한 정비작업이 없었다면 난마처럼 얽힌 뒷골목이나 냄새나는 빈민가, 그리고 게딱지같은 점포들을 획기적인 도시공간으로 탈바꿈할 수는 없었을 거란 주장도 있다. 특히 굽은 길을 곧게 펴서 대로로 만든 것은 다가올 자동차 시대를 미리 예감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이후 파리는 명실상부한 세계의 수도로 부상한다.

"세계의 수도라구요?"
"그래, 이제부터 개선문과 샹젤리제를 완성한 나폴레옹 3세 이후의 파리가 어떻게 발전했는가를 확인할 수 있는 역사적 현장을 좀 가보기로 할까?"
"네, 좋아요."


딸은 개선문 둘레를 끊임없이 도는 자동차 물결을 바라보며 벤치에서 일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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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Web. 출처/Daum Cafe: 한국 네티즌본부. 

  리님,  셔서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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