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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지식인의 사회/전상인(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횡설수설

 

병든 지식인의  사회 /전상인(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사회학)



20여년 전 대학교수가 되어 얻게 된 첫 직장은 춘천에 있는 한림대였다. 임용 과정 최종 단계에서 그 대학의  총장님앞에 섰을 때 그 분은 말문을 이렇게 열었다.  "지금 이 자리는 제가 선생님을 심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총장 으로서 감사의 인사를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허리 굽혀 악수를 청했는데,그 순간 나는 감격에 겨워 거의 주저 앉을 뻔했다 .그분은 우리나라 교육계의 큰 어른이신 정범모 선생님이시다.


당시 그 대학은 학식과 덕망을 고루 갖춘 원로 교수가 많았다.어느 날 소박한 환영모임이 있었는데,그 가운데 한분이내게 말했다."우리가 튼튼한 병풍이 될 터이니교수로서 하고 싶은 거 실컷 하세요"이어서 당부 몇가지가 여기저기서술잔에 실려 왔다.하늘이 무너져도 수업이 우선이다. 재물과 권력 앞에  먼저 고개 숙이지 마라.닭벼슬만 못한 게 "중벼슬"이거늘 선비는 세속의 감투를 멀리 해야 한다. 등과  같은 것이었다.


사사로운 개인사 한 장면을 소개하려는 것이 아니다.대학가에 나름의 영혼과 품격,그리고 아우라가 남아 있었던 그때 그 시절이 가끔은 그리워 해 본 말이다.오늘날 우리나라 지식인 사회는 하루가 다르게 무너져 내린다. 우선 현실 정치에 참여하는이른바 "폴리페셔"가 너무 많아 졌다.지난 대선의 경우 수천 명이 선거 캠프에 가담할 정도가 되었다.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어용"지식인이라는 말도, "반체제" 지식인이라는 말도 함께 살아 졌다.정치권에 진입하는 일이 그만큼 흔해 졌다는 방증이다.


한편으로 이는 유교 문화가 남긴 학문의 권력 지향적 전통과 무관 하지 않다.또는 작금의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정당정치가 아닌 "캠프 정치" 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말하자면 교수들에게 선거란 일종의'장날"이 된 셈이다.

여기에 가세 하는것이 인구 절벽 문제다.최근 선거 캠프에 지방대 교수가 특히 많이 몰리는것은 신입생 모집이 구조적으로 여의치 않은 상황에서 비롯된 개인적인 생존 전략의 측면이 없지 않다. 이래  저래 교수 본연의 일에 충실한 분위기는 확실이 아니다.


대학의 정치화는 용역형(用役型)학문 체제의 심화와도 연결 된다. 목하 대한민국은 유래가 없는 "공정(公定)사회 가 되었는데, 공무원이 다 정한다는 의미에서다. 5년 마다 바뀌는 정권의 업적은 현실적으로 관료 조직에 의존 하지않을 수없고, 관료사회의 직업적 이익은 그때 그때 권력의 선호와 취향에 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그 결과 관(官)주도 R&D 사업이 시나브로 우리나라 지식 생태계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다.

학술정책이 이념적으로 오염되고 정치적으로 왜곡되는 가운데 많은 대학 교수가 관변 프로잭트에 재미를 붙인 "지식업자"로 전락 하고 있다.


언필칭 정보화 시대도 대학의 위상을 작고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이런 현상 자체는 물론 범세계적이다.하지만 세계  최고  수준의 IT 강국인 지라 대한민국에서는 그 정도가 훨씬 더  심하다. 진리를 추구하는 학문의 세계에서 조차  다수결원리를 떠 받드는 지적 표퓰리즘이 성행하고 있기 때문이다."집단 지성"이라는그럴듯한 이름으로  말이다. 아닌게 아니라 자신의 양심과 상관없이 대세나 유행 부터 살피는 "여론 맞춤형" 지식인 들이 확연히 늘었다."예능 지식인"의 범람은 마치 악화(惡貨)가 양화(良貨)를 쫓아내는 모양세다.


지성의 몰락은 사상과 철학의 "기울어진 운동장" 에서 절정을 이룬다.언제부턴가 대학가에서는 진보의 목소리만 요란한채 그 이외의 음성은 묻히거나 숨어 있다."문화혁명"을 방불케 하는 권력과 학문의 유착 때문이다."약자 코스프레"에 능

숙한 소위 '강남 좌파"가 "개념지식인"으로 분류되어 학계의 스타로 각광받는 시대다.이래 저래 오늘날 이 땅의 첢은 청춘들은 교양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이념에서 출발한다.


생각해 보면 1990년대  한림대 교수 사회의 풍경이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다. 그건 최소한의 기본이었다. 일찍이 근대학문의 대부(代父)*막스 베버는 지식인 특유의 "내적" 자질을 언급한 적이 있다.천직으로서의소명의식,구도자적 겸허함,

섣부른 진리에 대한 금욕적 경계,사실 판단에 대한 무한책임,등이 그것이다. 물론 그 사이 세상은 변했고 우리는 토양도다르다. 그럼에도 이런 정신과 문화가 있고 없음은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를 만든다.

며칠 전 대학 평가에서 우리는 아세아 권에서도 내놓을 만한 대학 하나  없다는 사실을  재 확인했다."병든 지식인"사회로는 어떠한 미래도 없다.



*참조:

막스 베버(Max Wever/1864-1920)

독일의  저명한 사회 과학자이자  사상가로

그 당시 독일의 사회주의자와 대결하였으며

역사학파가 가지는 이론적 약점을 지적하고

그 극복에 노력하였음.

주요 논문으로는"사회과학적 및 사회정책적

인식의 객관성"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의 탄생"

등이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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