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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개토대왕릉비문의 원문과 국역 관광[사적,유물]

광개토대왕릉비문의 원문과 국역

2002년 7월 광개토대왕릉비. 유리관을 씌우기 직전의 모습

아래는  전체 4면 비문의 1,802字 가운데 세월의 풍상에 마모되지 않고 남아 있는 비문과 국역을 읽을 수 있습니다. 아래 비문에서 보듯이 광개토대왕의 시호는,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이시다.


[참고]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이 말은 광개토태왕의 공식적인 호칭입니다. 광개토태왕릉비의 정식적인 명칭이기도 하지요. 여기서 국강상(國岡上)은 광개토태왕릉이 위치한 지역을 지칭하고,, 광개토경(廣開土境)이란 광개토태왕의 업적을 의미합니다. 평안(平安)은 치세의 표현을, 호태왕(好太王)은 왕을 아름답게 호칭하는 말입니다.

이에 이 블로그 운영자가 광개토경(廣開土境)에 대해  앞 꼭지의 해설을 참고하여 덧붙인다면 '開土境'은 하늘이 열어준 땅이라는 뜻이라니 이를 크고 넓게 만드신 太王으로 볼 수 있겠네요.

 

대왕은 18세(391년)에 왕위 올라 39세(412년)에 승하하셨다.

그의 아들 장수왕이 대왕의 3년상을 마치고 414년 대왕의 비를 건립하셨다.

만주 통구(현재 길림성 집안현)에 세워진 이 비석은 노천에 방치되었다가 지붕을 씌우게 되고, 드디어 중국 당국에서는 고조선과 발해의 역사를 중국사에 포함시키려는 동북공정과정의 일환으로  비석을 유리창틀 속에 가두고 관광은 물론 일반인의 출입을 금지시켰다.

위의 지도에 보이는 고조선의 영토는 보기만 해도 가슴 벅차다.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할 수 있었던 것도 고조선 유민들이 살고 있는 땅이었기에 가능했다.

한국민족은 사성의 발음체계를 가진 한족과는 엄연히 구분된다.

유목민족인 북방의 몽골계로 남하하여 백제와 교류하던 일본에까지 이르렀고

동방으로 갈라진 일파는 알래스카를 거쳐 멕시코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러니까 고조선의 지도에는 단군으로부터 남하하면서 이룩한 터를 잡았던 영토가 역력하다.

텐트에 주거하며 겨울이면 가축과 가족들을 이끌고 엎어지고 넘어어지면서 설원을 탈출해 이동하는 유목민들의 영상을 볼 때면 온갖 간난을 이겨낸 우리 조상들의 슬픈 역사를 보는 듯하여 가슴이 메어진다.

한국인이 세계활쏘기대회에서 우승을 독차지하는 것도 필연적인 사실로 유목민들의

DNA를 가진 피가 맥맥히 흘러 조금만 훈련하면 그 능력이 금새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碑文 1

唯昔始祖鄒牟王之創基也 出自北夫餘 天帝之子 母河伯女郞 剖卵降世 生而有聖德 □□□□□命駕巡幸南下 路由夫餘奄利大水

삼가 생가건대, 옛적에 시조 추모왕께서 우리 고구려를 창건하셨다. 추모왕은 북부여에서 출생하셨고, 아버지는 천상의 상제님이시고 어머니는 하백의 따님이셨다. 알을 깨고 세상에 태어나셨고 태어나면서부터 성스러운 덕이 있었다.  □□□□□ 추모왕이 길을 떠나 수레를 몰고 남쪽으로 내려가는데 길이 부여의 엄리대수를 거쳐가게 되었다.

 

 王臨津言曰 我是皇天之子 母河伯女郞 鄒牟王 爲我連葭浮龜 應聲卽爲連葭浮龜 然後造渡 於沸流谷忽本西 城山上而建都焉

이때 추모왕이 나룻가에서 외치시기를“나는 하느님의 아들이요, 하백의 따님을 어머니로 한 추모왕이다. 나를 위해 갈대를 연결하고 거북이 무리를 띄어서 물을 건너게 하라.”하였다. 그 말이 떨어지자 곧 갈대가 연결되고 거북이들이 물위로 떠올랐다. 그리하여 추모왕은 물을 건너가서 비류곡 홀본 서쪽 산위에 성을 쌓고 도읍을 세우셨다.

 

不樂世位 因遣黃龍來下迎王 王於忽本東岡 黃龍負昇天 顧命世子儒留王 以道興治 大朱留王紹承基業

추모왕이 세상의 왕위를 즐거워하지 않을 무렵 하늘에서 황룡을 내려 보내 왕을 맞이하였다. 홀본성 동쪽 언덕에서 황룡이 왕을 업혀 하늘로 올라갈 때, 세자인 유류왕을 돌아보고 명령하여 당부하시기를도로써 나라를 다스리라.[以道興治]”하셨다. 대주류왕은 선왕의 유지를 받들어 도로써 나라를 다스려 왕업을 계승 발전시키셨다.

 

還至十七世孫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二九登祚 號爲永樂太王 恩澤洽于皇天 威武振被四海 掃除□□ 庶寧其業 國富民殷 五穀豊熟 昊天不弔 卅有九 宴駕棄國 以甲寅年九月甘九日乙酉 遷就山陵 於是立碑 銘記勳績 以示後世焉

대대로 왕위를 계승하여 17세를 내려와서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에 이르렀다. 왕께서는 18세(391)에 왕위에 올라 칭호를 영락태왕이라 하셨다. 호태왕은 그 은혜와 혜택이 하늘에 미치고, 불의를 바로잡는 위무는 온 세상을 뒤덮었다.  부정한 무리를 쓸어 없애시니 백성은 직업에 안정되었다. 나라가 부강하니 백성은 넉넉하고 오곡이 풍요하게 무르익었다. 하늘이 돌보지 아니함인지 39세(412)에 세상을 버리고 나라를 떠나셨다. 갑인년(414) 9월 29일(을유일)에 산릉에 모시고 비석을 세우고 훈공과 업적을 기록하여 후세에 보이는 바이다.


國岡上廣開土境平安好太王 碑文 2~3으로 연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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